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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집간다와 장가간다의 차이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15-05-15 14: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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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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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래로, 유교적 전통관념하에서는 ‘시집온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우리 속담에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라는 말도 있다.

남성 중심의 주자 성리학 사상이 혼례에도 깊이 침투한 예로,

혼인을 치른 뒤 바로 신부를 신랑집에 데려옴으로써 친정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바로 시댁의 습속에 맞추게 하는 성격을 띠며 이를 ‘친영’이라 부른다.

그리고 흔히 여자는 ‘시집을 감’과 동시에 ‘시집귀신’이 되어 어떤 일이 있어도 시댁에서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고 ‘우리의 전통’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보다 더 오래전 ‘데릴사위’ 풍습이 있었다.

데릴사위제란 고구려 혼례풍습으로 결혼을 해도 남자가 여자집에서 일정기간을 사는 것을 말하며 당시 일반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누구누구 장가간다.’라고 할 때 ‘장가간다.’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두고 사위가 부인의 집에 머문다 하여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중기까지도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이러한 풍속은 외가와의 친밀성을 깊게 하였고

실제 조선 후기까지도 대부분 관리들은 외가에서 태어나 장성할 때까지 머물렀다.

이러한 사례는 흔하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율곡 이이가 외가인 강릉의 오죽헌에서 태어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궁중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이러한 ‘친영’제도를 보편화시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데릴사위’풍속은 신랑이 신부집에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장치였을 뿐 아니라

정치적 배경이 있는 장인의 든든한 지원까지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전기까지도 처가나 외가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혼례에서 '주자가례'에 입각한 친영례의 도입은 단순한 풍속의 변화만이 아니라 기존 생활방식의 변화,

즉 처가에 대한 의존도를 약화시키는 사회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사회적 배경을 두고 볼 때, 처가와 함께 살며 처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근래에 생긴 신풍속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천 년이 넘도록 지속되어 오던 우리의 풍속이었으며, 처가덕을 보지 않겠다는 남성중심의 사회는 500년이 채 안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장자상속은 조선후기에 정착된 관행일 뿐 조선중기까지도 자녀들에게는 균분 상속이 지켜졌다.

즉 딸이라고 해서 재산상으로 크게 불이익을 받지 않은 것이다.

딸은 경제적으로 엄연히 아들과 같은 지위를 누렸기 때문에 외가에서의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유리한 조건이었다.

본 내용은 한복나라카페에서 이미지와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hanboknara1/4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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